본문 바로가기

Diary/2019

2019.07.15(MON)

출처 : 네이버 영화

 

. 오랜만에 한국영화 암살(2015)을 봤다. 다시 보니까 전지현 웨딩드레스 입히려고 찍은 영화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웨딩드레스 입고 권총부케로 무장한 안옥윤은 말이 안 되게 아름다웠다. 암살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본 뒤에도 종종 떠올리곤 했다. 변절하여 입신양명한 ***은 늙었지만, 젊은 시절의 사명을 끝마치지 못한 안옥윤과 명우는 늙지 않았다. 늙지 못했다, 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다시 젊은 안옥윤'이 등장하는 장면이 미소지니(여성혐오)라기보다는 어떤 사명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써는 가장 마음에 드는 여성 원탑 영화 중 하나.

. 대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났다. 성별적합수술을 받기도 전의 일이다. 언제나 나를 '언니'라고 부르던 여학우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가 어느 날부터 이상한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터프(TERF),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즘(/페미니스트)들의 말을 들은 것이다. 나는 터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았지만 그 후배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트랜스젠더는 당신들처럼 그냥 존재하고 살아갈 뿐이다. 어제보다 조금 나은 나를 성취하면서 일보 전진하는 게 한계인, 내 현실과 타협해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이 말조차 납득시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그 후배를 내 인간관계에서 배제하기로 마음먹었다.

. 부치지 못 한 편지들을 그러모아 일기처럼 노트에 쓰기 시작했다. ***씨를 향한 마음들을 꼭 하루치 씩 담다 보면 노트가 찰 테고, 그 때쯤에는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릴 것이다. 우리는 눈이 내리면 다시 만나기로 했다.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마음을 가져도 되는지 스스로 의심할 만큼, 나는 ***씨를 많이 힘들게 했다. 다만 세상 어느 구석에라도 적어놓고 싶은 것이다. 보고 싶다고. 키다리 아저씨 생각이 난다. 주디가 쓴 편지들로 엮은 책은 마지막에 키다리 아저씨를 향한 주디의 연애편지로 끝이 났다. 내 이야기는 그럴 수 없겠지. 마음이 아리다.

.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에게 깊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면, 아무리 잃어버릴까 불안하고 빠져들까 두려워도, 제발 그 마음 잘 돌려주라고 말 하고 싶다. 잃을까봐 불안해해서, 빠져들까 두려워해서, 내가 흔들리고 헷갈리는 만큼 상대는 힘들다. 20대 때의 나에게 이 말을 정말 해 주고 싶다. 정신 좀 차리라고. 네가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굉장히 드물고 소중한 일이 네게 벌어지는 중이니, 이 순간에 최선을 다 해서 감사하라고... 그렇게 말 하고 싶다. 그 철없던 시절의 나를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 머리카락이 다시 허리에 닿기 전까지 할 일들 리스트를 적었다. 그 중에 연애하기가 있었다. 아주아주 좋은 사람이랑 오래오래 연애하기. 나도 모르게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가져도 될는지 모르겠어서 한숨을 쉬었다. 조금 울고 싶었다. 20대 때의 나는 왜 그렇게까지 엉망진창이었어야 했던 걸까. 내가 싫다.

'Diary >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7.26(FRI)  (0) 2019.07.26
2019.07.13(SAT)  (0) 2019.07.13
2019.07.09(TUE)  (2) 2019.07.09
2019.07.08(MON)  (1) 2019.07.08
2017.07.07(SUN)  (2) 2019.07.07